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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57
190718 ‘치유와 회복의 하나님’ (눅 5:17-26)
7/19/2019 5:20:59 AM | 64.231.166.94 | 555 읽음 | 마지막 변경 : bus57, 7/19/2019 5:21:46 AM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받은 큰 은혜와 도움을 다시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의 역할이다. 오늘 본문에는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데리고 나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회복되기를 바라며 친구를 데리고 주님 앞에 나아온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도서 4:9-10) 말씀에서 말하는 ‘화’는 곧 믿음을 잃는 것이다. 좋은 친구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믿음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이다. 권고를 하는 친구도 좋은 친구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친구도 좋은 친구이다.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주님은 병을 고쳐 주신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죄 사함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신성 모독이라 말한다. 거기에 주님은 죄 사함과 회복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물으신다. 우리에게는 어느 것이 더 큰가? 죽음 앞에서는 당장 치유함을 바란다. 그러나 치유후에는 죄짓는 마음의 문제가 더욱 커져 감을 보게 된다. 삶의 문제는 곧 죄의 문제이기에 죄 사함없이는 결국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몸이 건강해져도 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에 결국 죄 사함의 권세가 더욱 크다. 죄 사함을 받으면 마음의 평안과 기쁨, 영적 회복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육체의 치유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치유를 받아도 죄 사함 없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자랑할 일이 없음에도 받은 축복을 내 의로 자랑하고 드러내게 되어 죄 사함의 권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건속에서, 때로는 우리가 병든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크다. 건강한 가운데 죄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감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병 중에도, 실패 중에도, 때로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성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소리가 더욱 크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몸의 치유보다 죄에 대한 사함의 소리가 더욱 커져갈 수 있어야 한다. 은혜와 감사의 소리가 더욱 커져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나사로를 찾아가셨지만 오늘 친구들은 주님을 찾아온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직접나온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충성은 곧, 삶의 방향을 바꿔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길로 섬김을 보인다. 기도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죄에 대한 깨달음이 더욱 커져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아간다. 이적의 주관적 근거는 우리의 믿음이요, 객관적 근거는 십자가이다. 믿음이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다. 오늘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주님께로 나오는 행동하는 믿음, 많은 사람들을 뚫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간 장애도 뛰어넘고 손해도 감수하는 믿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기회를 포착하는 믿음으로 나아왔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변함이 없으나 우리는 때로는 잊고 때로는 느끼지 못한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 말씀을 듣고도 깨닫거나 결단하지 못한다. 오늘 중풍병자는 아픔과 고통을 통해, 친구들을 통해,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죄사함을 받는 계기를 얻는다. 우리의 죄와 아픔, 고통과 어려움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죄 사함을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믿음으로 서로를 믿음 가운데 일으켜가며 끝까지 맡겨진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YouTube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m6BN1LOO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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