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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 사도신경 강해 10 ‘성령의 하나님 다섯번째’ (요 14:1-7)
2/7/2020 8:31:06 PM | 74.15.96.95 | 953 읽음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함에도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 성공과 부귀, 명예가 더욱 커 보임에 결국 영생은 나중에 구하게 된다. 그러나 영생이 먼저이다. 사도신경 가운데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교회가 차례대로 먼저 되고 그 후에 성도의 교제, 죄사함, 부활과 영생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내 소원과 성도의 교제가 먼저 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과 교회가 없이 되기에 결국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새 힘과 새 능력을 받지 못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의지하게 되어 사람의 판단에 좌지우지되게 된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 있음에도 외로움과 고독 가운데 빠지게 된다. 그러나 죄 된 생은 영생이 아니며 저주 아래 있는 삶은 영생이 아니다. 죄 사함을 받은 생명,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명이 영생이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그 자유 안의 영원한 생명이 영생인 것이다. 구원이 현재적이고 과거적이라면, 영생은 적극적이고 완전한 구원의 미래적이다.
영생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의 공포, 죄악이 만연한 현재에 대한 회피로 이해한다. 불교에서는 번뇌, 괴로움과 미움 등 정신적 고민과 어려움을 벗어난 것으로 이해한다. 실존주의자들은 고통에 대한 냉정한 자세를 생각하며, 죽음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한다. 일반적으로는 영혼불멸, 육체의 부활은 인정하지 않고, 영혼만이 불멸한다는 의미로 육체적 생활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정신만이 가치 있다고 이해하거나, 구약에서 등장하는 스올과 죽음을 통해 영생의 의미를 희미하게 여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세를 부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세 또한 받아들이고자 한다. 현재도 좋고 내세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영생은 첫번째,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칭의함 없이는 하나님의 선물이 뇌물이 되고 만다. 내 일,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영생도, 우리의 모든 것도 조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기에 나에게 없다면 내게 필요 없는 것이요, 내게 있다면 하나님의 선물이자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두번째 영생은 부활 후 생명의 변화를 통한 그리스도적 변화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고 살며,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세번째 영생은 지금 현재적 변화, 성화되는 삶 가운데 영생의 삶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고, 부활의 생명이 없이는 영생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의 삶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살아가는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지 늘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네번째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거기에는 원리적인 앎과 체험적 앎이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체험적 깨달음이 없이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가 없으며 영생을 믿지 못한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체험적 깨달음이 필요하다. 체험적이며 완전한 삶은 정신과 육체의 합일이며 감동과 지식의 합일이다.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체험이다. 그러기에 예수를 알고도 변화가 없으면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을 좇게 되며 죽은 것과 같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사람으로 인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를 아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것이며 그리스도가 나를 알고 내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다섯번째 아는 것은 믿음을 요구한다. 성경의 믿음의 사건들을 믿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무의미해진다. 내 삶의 신앙적 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 영생은 없다. 우리의 모든 고민은 알고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지 못하기에 능력도 없다. 그러나 믿음에는 행위가 따른다. 우리의 최선과 기도 가운데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하기에 우리는 흔들리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믿는 자, 영생은 성례의 전을 말한다.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약속은 선물이고 이 선물속에 순종과 충성이 들어간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현재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곧 순종이다. 예수님을 앎과 믿음을 종합적으로 이야기해서 성례의 전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어야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행해야만 내 생명은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곧 영생이다.
내가 행하는 일 가운데 내 의가 나오면 그것은 곧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다. 약속은 선물이다. 내 고행과 공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충성할 때 능력이 있고, 그로 인해 또한 순종할 수 있다. 이는 고독하며 좁은 길이다. 그러나 좁은 길이 또한 살아나는 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생을 얻은 자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이 아닌, 영생의 시작은 바로 지금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바로 영생의 시작이다. 사망과 죄를 이기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생활 자체가 영생인 것이다. 죽음을 통한 영생의 시작이 지금임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 있는 그리스도적 삶의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영생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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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6ZIBOFee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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