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ship /
Login
About YAEGERIN
목회자인사말
교회비전/교회사명문
예배시간&위치
주보
공지사항
SERMONS
주일설교
매일의 양식
목회자 칼럼
BOARD
자유게시판
앨범
자료실
추천도서
장로님성경이야기
SERMONS
매일의 양식
Infomation
게시판 이름
ddddd
시샵
심볼
일반글
오늘글
새글
인기글
비밀글
공지사항
관련링크
파일
플래시
사진
음악
동영상
사용자 권한
목록보기 (
O
) 글보기 (
O
)
공지쓰기 (
X
) 글쓰기 (
X
) 답글쓰기 (
X
) 댓글쓰기 (
X
)
파일첨부 (
X
) 파일받기 (
O
)
웹브라우저
Template Infomation
Author
Violet Development Laboratory 오픈닷넷
Contact
Version
0.1 Beta
Description
default (독립형)
호환 : VWeb:Board
기본템플릿입니다.
Stylesheet Infomation
Author
Violet Development Laboratory 오픈닷넷
Contact
http://www.vdlab.net
Version
0.1 Beta
Description
default
호환 : VWeb:Board(default, default.fckeditor)
기본스타일시트입니다.
키워드를 입력하세요. 제목, 내용, 작성자, 태그에서 찾습니다.
bus57
220412 고난주간 새벽예배 ‘최고의 선물, 십자가’ (마 16:24-28)
4/12/2022 4:32:17 AM | 70.24.70.114 | 576 읽음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살아있으나 오히려 십자가를 멀리 하고 싶어할 때가 많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말씀하신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대속하심, 내일의, 영원의 소망이다. 사람들은 내일의 소망보다 죽음의 두려움이 더 커지기에 병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살아있기에 오늘이 살 만한 것보다 우리에게 영원의 소망이 있기에 오늘은 살 만한 것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대속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십자가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때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생명이 없이는 나뭇잎이 떨어지지 못하고 그 위에 새 나뭇잎, 새 생명이 돋아날 수 없듯 살아있을 때 믿음을 붙들어야 부활의 소망도 가질 수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신다. 그러나 직접 주님의 몸을 만지고도 의심한 도마와 같이 우리 역시 매순간 예배의 자리에서 결단하지 않으면 믿음을, 십자가를 붙들 수 없다. 주님은 가장 오래 고통스럽고 비참하며 치욕적인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다. 이처럼 우리 역시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희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구원받는 것은 쉬우나 구원의 길을 걷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가장 수고한 자가 가장 기쁘게 음식을 먹듯 대속, 그 섬김의 길을 걸어갈 때 가장 기쁘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속의 사건은 모든 것이 변해간 역사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진리이다. 대속은 그만큼의 가치를대신 주고 속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지신 하늘과 땅의 모든 가치를 대신 내어 주고 우리를 대속하셨다. 이러한 우리는 주님께 무엇보다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에, 세상의 잣대에 우리의 가치를 재단당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 있는 죽음이셨기 때문이다.
Minister에는 섬김과 왕의 의미가 같이 들어 있다. 섬김의 삶으로 왕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높아져 섬김을 받고자 하면 하늘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목적을 잃은 채 세상 가운데 패배한 노예의 삶, 죽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인자의 왕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신 영적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때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때 내가 가졌다 여긴 믿음, 나의 의가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가치 있는 십자가의 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라가는 희생과 인내로 섬기는 삶이다. 그 위에 하나님이 부으시는 도움과 그의 능력, 권세가 함께 하기에 우리는 걸어갈 수 있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닌 삶의 새로운 시작’ 이다. 우리는 죽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죽는 자들이다. 우리의 모든 죄악들이 이 고난 주간, 주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 죽고 다시 새롭게 회복되는 부활의 역사, 주님의 왕권을 가진 믿음의 역사, 부활의 능력속에 우리의 영이 새롭게 살아나는 귀한 역사가 우리 삶에 있기를 소망한다.
YouTube 링크
https://fb.watch/cl79YAK-9l/
댓글편집
Html
서버에서 처리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체
(627)
220413 고난주간 새벽예배 ‘으뜸이 아닌 섬김’(마 20:25-28)
+0
+0
(861)
bus57
4/13/2022
220412 고난주간 새벽예배 ‘최고의 선물, 십자가’ (마 16:24-28)
+0
+0
(576)
bus57
4/12/2022
220405 마지막 아담 (고전 15:35-48)
+0
+0
(757)
bus57
4/5/2022
220329 부활이 있기에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29-34)
+0
+0
(616)
bus57
3/29/2022
220322 부활의 첫 열매 (고전 15:20-28)
+0
+0
(598)
bus57
3/22/2022
220308 부활의 능력, 속죄 (고전 15:12-19)
+0
+0
(622)
bus57
3/8/2022
220301 내게 주신 은혜 (고전 15:9-11)
+0
+0
(570)
bus57
3/1/2022
220222 믿음의 유산, 성경 (고전 15:1-8)
+0
+0
(722)
bus57
2/22/2022
22년 2월 15일 화요새벽예배 '질서대로 하라' <고전 14:26~40>
+0
+0
(613)
bus57
2/15/2022
220208 덕을 세워라 (고전 14:10-25)
+0
+0
(540)
bus57
2/8/2022
220201 분명치 못한 소리 (고전 14:1-9)
+0
+0
(677)
bus57
2/1/2022
210111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려라 (고전 13:8-13)
+0
+0
(920)
bus57
1/11/2022
210104 나누는 사랑의 기쁨 (골13:4-7)
+0
+0
(1007)
bus57
1/4/2022
211228 ‘사랑의 정의’ (고전 13:1-7)
+0
+0
(794)
bus57
12/28/2021
211221 더욱 큰 은사( 고전 12:28-31)
+0
+0
(749)
bus57
12/21/2021
211214 ‘일체, 다양’ (고전 12:12-27)
+0
+0
(577)
bus57
12/14/2021
211207 은혜와 은사 (고전 12:1-11)
+0
+0
(553)
bus57
12/7/2021
211123 성찬의 마음 (고전 11:17-34)
+0
+0
(772)
bus57
11/23/2021
211116 스스로 판단하라 (고전 11:1-16)
+0
+0
(645)
bus57
11/16/2021
211109 '영광, 오직 하나님께' (고전 10:23-33)
+0
+0
(683)
bus57
11/9/2021
1
2
3
4
5
6
7
8
9
10
MISSION STATEMENT
The Great Vision
The Great Commandment
The Great Spirituality of Mission
The Great Transformation of Glory
The Great Community of Blessing
SERMONS
주일설교
매일의 양식
목회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