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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 ‘우리의 지경을 넓히소서’ (대상 4:9-10)
1/5/2020 7:31:04 PM | 70.30.37.145 | 504 읽음 |
‘어두운 욕망을 위해 우리는 쉽게 거짓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지만 의와 거짓이 섞여 공평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우리가 2020년을 기대할 수 있음은 우리를 복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인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구원속에 복되게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나 이단들은 늘 율법적인 면을 강조하여 다른 이를 판단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기가 올라가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염소는 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큼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얽매이면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믿음은 소유가 아닌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가의 관계성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우리는 더욱 보게 되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의 감사함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된 자, 존귀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이 먼저 치유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치유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과거에 얽매여 새 날을 맞을 수 없다. 용서함으로 과거를 벗어나 새 마음을 가질 때 새 날을 비로소 맞을 수 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치유하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용서하며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있는 자, 많이 받은 자가 많이 주는 것이 아니다. 적게 받은 자일지라도 줄수록 줄 수 있는 자로 바뀌어 간다. 지금 나눌 수 있는 자가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음이 복된 진리이다. 지금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없는 것을 바라는 탐욕과 탐심을 갖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고통으로 나온 자, 조롱과 멸시, 천시의 야베스가 하나님만이 복주시는 분이라는 고백가운데 간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복된 자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는 자는 교만하며 비천함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면 절망에 빠진다.’ 고통은 귀먹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몸부림친다. 고통과 꽉 막힌 미래 앞에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야베스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 삶의 여리고성은 무너진다. 고통의 때야말로 바로 기도할 때인 것이다.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기도하는 이를 변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과 기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평범한 이들을 택하셔서 우리의 의지와 연약함을 통해 초월적 역사와 기적을 이루어 가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할 일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베스를 통해 버림받은 자의 한계를 초월하여 환경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이루셨다. 할 수 없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을 부른다.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능력을 보며 한계를 깨고 능력의 사람, 존귀한 자로 변화되어 간다.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할 때에 지경을 넓혀가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다. 허락하신 새로운 한 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정과 일터,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에서 지경을 넓혀 가실 하나님의 축복된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YouTube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9YIz76LD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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